더 게임(래퍼)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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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래퍼. 갱스터 랩 대중화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블러즈 갱단의 얼굴마담 격 래퍼로 스테이지 네임인 더 게임은 어렸을때부터 내기하는것을 좋아해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다.'''I'm sick of motherfuckin' talking about The West died'''
'''놈들이 "웨스트사이드가 죽었다"라는 걸 듣는것도 이제 지겨워.'''
'''Can't you hear my heart beating?'''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
'''That's the motherfuckin' West side.'''
'''바로 이게 씨발 West side'''
The City (Feat. Kendrick Lamar) 中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서부 힙합의 본좌에 위치한 래퍼로 서부 힙합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큰 형님 취급을 받는다. 다만 여러가지 구설수와 사건으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비난을 받다보니 그만큼 안티팬들도 상당히 많다. 블러즈 와 대립관계인 미국 갱단 크립스 출신의 래퍼 스눕독 과 같이 음악을 낸 적 있다.
2. 인생사
1979년 11월 29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콤프턴[2] 출생. 출신지부터 범죄율 높기로 유명한 캄튼이고 부모가 그 악명높은 크립스 갱스터 단원이다. 집안에는 총기와 탄알이 나뒹굴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아버지는 헤로인 중독자였다.
어느날 어린 게임은 누이를 강간하려는 아버지를 쏴죽이려 했지만, 탄창이 비어서 역으로 아버지한테 구타당했다. 7살때 친구가 청소년들에게 옷과 신발로 시비가 붙다 목숨을 잃고, 부모가 구속당하고,13살때 라이벌갱단에 의해서 큰 형인 제이본 테일러가 살해당했다.게임은 포스터 케어에 이송되어 15살동안 지냈으며 전자 오락, 농구에 심취하는데, 훗날 이것이 자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양육원을 나오고 어머니와 같이 살며 컴튼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이 크립스 갱단의 나와바리인지라 학우들이 대부분 크립스 갱단 소속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작은형인 빅 페이스 100을 따라 시더 블록 파이루 블러즈에 입단하고 1999년 학교를 졸업해 워싱턴 주립 대학교에 들어가 농구을 비롯한 운동을 잘해 농구부 팀원으로 활동하거나 육상경기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약 거래가 들통나 퇴학당한다.
결국 갱스터 짓으로 밥벌어먹는 신세가 되어 각종 범죄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집에서 마약 제조 중 손님으로 위장한 라이벌 갱단들에게 '''가슴에 총 5발을 맞고'''오랜 기간동안 병원 신세를 진 후 퇴원 뒤 갱단 활동을 접게 된다. 그리고 진로를 래퍼로 잡아 평소 존경해오던 N.W.A 멤버들의 랩을 들어가며 혼자서 랩을 독학한 뒤 음악가의 삶으로 들어선다.(초반에 JT The Bigga Figga가 게임을 도와줬다)
3. 커리어
언더그라운드에서 한껏 실력을 내뿜다가 형인 빅 페이스 100과 작업한 믹스테입을 들은 션 콤즈가 눈독을 들여 배드 보이 레코드로 영입될 뻔 했지만, 자신이 어릴적 존경해왔고 메시아와 같은 존재인 닥터 드레의 애프터매스 레코드로 들어간다. 드레에게는 잊혀져가는 서부힙합의 연줄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더 게임이라는 래퍼의 등장은 더 할나위 없는 셈.
그뒤 드레의 추천으로 50 Cent가 이끄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있는 G-Unit의 멤버가 된다. 다만 더 게임과 애프터매스의 방향성은 달랐는데, 더 게임은 N.W.A와 같은 순수한 갱스터 힙합을 꿈꾸고 있었으나 애프터매스에선 더 게임이 상업적으로 몹시 매력적인 인물이었기에 이러한 차이점은 곧 이어질 힙합 역사에 기록될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내막속에서 2005년, 더 게임은 데뷔 앨범 'The Documentary' 를 발매해 힙합 역사상 손에 꼽을만큼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앨범은 힙합 역사에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부활을 전반적인 앨범 분위기로 삼았으며, 앨범 곡명에 전설적인 래퍼들의 명반 이름들을 하나씩 집어넣어 자신도 그들과 대등한 래퍼가 될것임을 다짐하고 이 앨범은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히트를 치게된다. 이러한 성공에서 더 게임을 상업적인 틀에 가두어 통제하려 했던 50 Cent와 순수한 갱스터 힙합을 원했던 더 게임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것. 결국 더 게임은 자신의 리더였던 50 Cent와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G-Unit에서 방출당하게 된다.
G-Unit에서 방출당한 더 게임은 빡이 돌아버려 총을 들고 총격전까지 벌이며 50 Cent의 G-Unit에 반항하며 존재감을 피력했으나, 50 Cent가 이끌던 G-Unit의 파워를 이기지는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닥터드레 역시 50 Cent의 편을 들어주며 더 게임은 모든것을 잃어버린채 원히트 래퍼로 래퍼생명이 끊어지나 싶었으나...
2006년 2집 앨범 'Doctor's Advocate'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 역시 힙합 음악사의 클래식 반열에 올라 소포모어 징크스는 개나 줘버리며 최고의 래퍼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전작에 비해 더 강렬하고 더 독해진 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을 보여주며 클래식으로 평가 받는다. 1집을 관통하던 키워드는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의 부활이었는데, 2집에선 1집 발매 이후 겪었던 시련. 특히 닥터 드레에 대한 애증, G-Unit에 대한 분노를 화제로 삼았는데, 듣는이에겐 더 게임이 가진 캐릭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해 지금의 더 게임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결국 애프터매스는 궁지에 몰릴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괴물을 만들어낸 셈.
뒤이어 2008년 'LAX' 의 성공으로 오존 어워드에서 베스트 웨스트 코스트 랩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였다. 다만, 앞선 1집과 2집의 평가보다는 박한데, 아무래도 1집의 포부와 2집의 분노에 이어 특별한 주제를 관통하지 못했다는 점. 물론 앨범 자체를 어우르는 곡들과 타이틀곡 My life의 히트는 호평을 받았다.
그 후 닥터 드레에게 다시 인정을 받고,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같이 작업한다는 뜻을 전해 모든 힙합 팬들의 기대를 모았고, 곧 이어 2011년 그의 4번째 정규앨범 'The R.E.D Album' 을 발매하나, 평가는 꽤나 박하다. 1집과 2집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는 4집 닥터 드레와의 화해에서 이어지며 기대를 모았고, 그 스토리를 이어가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외의 앨범전체를 어우르는 유기성은 엉망이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고 난잡한 구성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서 후반부 트랙을 지우면 4집 역시 상당한 명반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 앞서 전반부만큼은 굉장한 곡들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실패는 더 게임과 닥터 드레의 화합이라는 엄청난 키워드가 존재함에도 1,2집에 비해 부족한 평가를 받는 3집 판매량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둔다.
그 이후로도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중. 다음해 2012년에 발매한 'Jesus Piece' 는 어느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간간히 계속 발매하는 믹스테잎들도 평가가 예전만하지 못하다. 더 게임의 큰 매력 요소인 목소리도 맛이갔다는 평가 까지 받았으니... 그리고 2014년에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인 'Blood Moon: Year Of The Wolf' 는 커리어의 바닥을 찍을 정도로, 더 게임에게 남은건 스타성밖에 없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몰락해가는 수순을 밟았다. 다만 이때 더 게임은 다음앨범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앨범인 'The Documentary'의 정식 후속작인 'The Documentary 2' 를 예고하며 기대를 다시 끌어올리긴 했으나, 반대로 기념비적인 앨범을 다시 쓴다는것은 그만큼의 만족을 시켜줘야 되는데 지금 더 게임에겐 기대보단 걱정을 자아냈다.
이러한 관심속에서 2015년 더 게임은 'The Documentary 2'를 발매하는데, 간만에 큰 성공을 거두어 다시 평가는 전화위복. 이후 'The Documentary 2.5' 까지 발매해 웨스트 코스트 왕의 건재함을 다시금 알리는데 성공했다. 지금껏 시도했다가 아쉬웠던 랩 스타일의 변동, 목소리와 가사 등에서 완성적으로 뽑아내며, 이제는 죽었다고 평가받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간만에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2와 2.5의 합본까지 발매해내며 다시 주가를 상승시키는 중. 반면에 같이 몰락수순을 밟던 50 Cent는 돈 문제로 계속 구설수에 오르며 주가가 폭락하는 중이다.
2016년 7번째 정규 앨범 '1992' 를 발매해 더 진한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을 선보였다. 평가는 간만에 느끼는 깡통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라는 것이 중론. 간만에 느껴보는 정통 웨스트코스트 비트에 랩을 선보였다는 것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중.
그리고 곧 이어 다음 앨범이자 은퇴 앨범일지도 모른다고 예고한 'Westside Story" 를 예고해 드라마의 종지부를 찍으리라 예고하고 있다. 과가 LAX 발매 전에도 마지막 앨범이라 홍보했으나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진심으로 들려 팬들에겐 아쉬울 따름.
2019년 앨범명을 ‘Born to Rap’ 으로 바꿨고, 선 공개곡에서 카다시안을 또 저격하며 논란을 일궜다.
4. 50 센트와의 불화
더 게임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 50 Cent와의 디스전은 힙합 역사상 가장 화끈하고 유명한 디스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집 ‘The Documentary’의 큰 성공은 더 게임에게 큰 돈을 안겨주지만, 그 이후 의견충돌로 애프터매스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공공의 적인 상태가 된다. 이러한 극적인 상황에서 더 게임의 진가가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닥터 드레에게까지 버림을 받은 더 게임은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50 Cent를 포함한 G-Unit과 심지어 애프터매스 전체와 일당백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더 게임은 자신을 G-Unot으로 칭하고 G-Unit을 거세게 디스했는데, 실력으로는 게으른 천재라는 명성아닌 명성이 있던 Lloyd Banks나 디스의 아이콘인 50 Cent도 더 게임을 향해 디스 폭격을 퍼붓는다. 이런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더 게임은 결국 당시 최고의 크루였던 G-Unit을 몰락시키며 이후 천하의 50 Cent마저 더 게임을 피하게 된다. 이후로 G-Unit 재결합 이야기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50 Cent가 부정하며 10년 넘게 싸우는 중...
'''근데 그러다 2016년 드디어 10년만에 50 Cent와 화해했다.'''
같은 클럽에서 만났는데, 더 게임은 "자신은 괜찮다. 그 사건은 벌써 10년 전 일" 이라고 말하며, 클럽에서 50 Cent와 포옹까지 하며 과거 총격전까지 하고 죽어라 디스하던 형제는 결국 화해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변덕이 심한 둘이라 또 언제 서로 X까라고 해! 라며 돌아설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서로에게 쌓인 감정은 상당수 풀어졌을듯.
많은 팬들이 이 둘이 다시 합쳐 ‘Hate it or Love it’, ‘Westside Story’, ‘How We Do’ 와 같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주길 바라고 있다.
5. 디스코그래피
6. 기타
웨스트사이드 힙합 계보에선 N.W.A의 실질적인 적자이자, 닥터 드레 - 스눕 독의 뒤를 이은 서부 힙합의 왕으로 인정받는다. 이후에 서부의 왕은 켄드릭 라마에게 물려주게 된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해서 항상 시비가 자주 붙기로도 유명하다. 일단 한번 수틀리고보면 윗도리 탈의... 위 문단에 있는 50 센트와의 디스전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지유닛과 친하게 지내던 40 Glocc을 두들겨 패는 영상을 직접 찍어 올린 적이 있다.[5] 그 외로 믹밀, 식스나인과 같이 어린 래퍼들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편. 또한 킴 카다시안에게 꾸준히 공격을 하며 경찰을 폭력하거나[6] , 총기소지, 총격 사건에 피격되거나 나이가 많아 거물급이 된 상태에서 어린 시카고 갱스터들과 싸운다던지 아직도 이런저런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다만 빈민가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기부를 하거나 Bloods와 Crips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켐페인을 여는등 다양한 자선사업이나 인권운동에 활발하다.
2014년에 손등에 타투를 커버업 했는데, 오른손은 마이크 타이슨,왼손은 무하마드 알리(...)로 하고, 본인의 SNS에 "판사가 다음번에 나한테 왜 40 glocc[7] 을 팼냐고 물으면 "아니요 판사님, 제가 그러지 않았고 제 타이슨을 탓하세요"" 라고 했다. 타투에 관해선 그가 그의 몸에 타투를한 인물들은 버락 오바마, 넬슨 만델라, 투팍, Eazy-E, 닥터 드레, 그리고 위에 언급한 두명, 또 딸의 얼굴이 가슴팍에 있다.
'''대물이다'''.'''사진 주의'''
장신이다. 스눕 독, 위즈 칼리파, 투 체인즈 다음으로 키가 크다고 볼 수 있다.
GTA 산 안드레아스에서 B 덥이라는 마약 딜러 캐릭터의 성우를 맡은 적이 있다.
헬스 키친 시즌15 2화에 게스트로 등장한다.
디스로 유명한 더 게임이지만, 에미넴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최근엔 나이도 들고 가족도 생기고 거기다 닙시허슬의 죽음으로 철이 들었는지 전과는 전혀 상반되는 구설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가족에게는 그야말로 아들바보,딸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장 그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언급했던 Born 2 Rap에도 갱들의 싸움을 부추기기보다는 과거 이야기나 흑인들이 뭉치고 인권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주제로 랩을 한것만 봐도 이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볼 수 있다.특히 앨범 마지막 곡인 Roadside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는 가사를 써서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이 맞나싶다.